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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4.10 [페북펌] 마이클 샌델 '왜 도덕인가?' 내맘대로 번역 짜집기 범죄.
  2. 2016.01.02 하우스박사의 철학하기
  3. 2014.04.04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4. 2013.03.31 당신은 전략가 입니까?
  5. 2012.08.15 돈으로 살수 없는 것들.
  6. 2012.08.05 FTA 한 스푼 그리고 질문 하나.
  7. 2012.07.28 국민판사 서기호 입니다.
  8. 2012.05.02 직업 선택에 관한 한 젊은이의 고찰.
  9. 2011.08.12 미래의 진보 (이정희 유시민 대답짐)
  10. 2011.07.27 왜 도덕인가? 1

[페북펌] 마이클 샌델 '왜 도덕인가?' 내맘대로 번역 짜집기 범죄.

출처: https://www.facebook.com/permalink.php?story_fbid=218573348532241&id=100011387314528


마이클 샌델의 이 책을 아십니까?

최근에 출판사에서 마이클 샌델의 저서 <공공철학 Public Philosophy>를 다시 출간하면서 감수를 맡아 달라고 해서 작업을 시작했었습니다. 이전에 출간되었던 책이 있다고 해서 물어보았더니 놀랍게도 제 책장에 꽂혀 있던 <왜 도덕인가?>라는 책이었습니다.

이 번역서에는 큰 글씨로 Why Morality라는 글이 있어서 저는 Why Morality라는 책을 번역한 것인 줄 알았습니다. 제 친구인 다른 교수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같은 반응이었습니다. “원래 Why Morality를 번역한 것이 아니었나요?”라는 답변을 들었지요. 물론 번역서 표지에도 Public Philosophy라는 글이 있기는 합니다만 훨씬 작고 희미한 글자체로 쓰여 있지 말입니다. Why Morality는 원서에 붙어 있는 부제목 Essays on Morality in Politics와도 같지 않습니다. (본문으로 들어와서 있는 copyright 페이지에는 제대로 된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책 제목을 원문 그대로 옮기지 않는 경우는 많기 때문에 제목만 보고 다른 책이라고 생각했다면 그렇게 생각한 사람의 잘못이라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그런데 목차까지 완전히 다르다면 이야기는 다릅니다. 한 번 보시죠.

<왜 도덕인가?>의 목차
Part I 도덕이란 무엇인가 : 공정한 시민사회를 위하여
1장 경제적 도덕
-복권과 도박
-스포츠와 시민 정체성
-공공기관의 상업적 브랜드화
2장 사회적 도덕
- 온실가스 배출권
.....
3장 교육과 도덕
....
4장 종교와 도덕
-존엄사
-배아복제
-낙태와 동성애
5장 정치적 도덕
...

Part II 도덕적 가치의 원류를 찾아서
6장
...

Part III 자유와 공동체를 말하다
11장 모두를 위한 경제정책은 무엇인가?
-거대 기업에 거대 정부로 맞선다면?
-독점자본을 규제하다
-성장과 분배 정의의 실현
12장 시장중심주의가 시민의식을 어떻게 왜곡하는가
.....
13장 시민의식은 회복될 수 있는가
.....
14장 개인주의를 넘어 공동체로
특별기고: “정의의 한계와 도덕적 가치에 대해 묻다”

<공공철학 Public Philosophy>의 목차
제1부 미국의 시민생활
1장 미국의 공공철학 탐색
2장 개인주의를 넘어: 민주당과 공동체
2장 미완의 덕성 정치
4장 거대한 아이디어
5장 예의의 문제
6장 탄핵-과거와 현재
7장 로버트 F 케네디의 약속

제2부 도덕적, 정치적 논쟁들
8장 복권사업에 대한 반대론
9장 광고와 상업주의
10장 공공영역의 브랜드화
...

제3부 자유주의와 다원주의 그리고 공동체주의
22장 도덕과 자유주의 이상
.....
30장 공동체주의의 한계

여러분들께서는 두 개의 목차를 비교해 보시면 같은 책이라고 생각하셨겠습니까? 저는 전체적으로 느낌은 비슷하지만 두 개는 별개의 책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번역서에 대해 뭐 이런 식으로 책을 썼나 하고 샌델 교수에 대해 좀 실망했었습니다.)
나중에 비교를 해 보니 번역서의 1부는 원서의 2부의 글들을 새로운 범주를 만들고 순서를 바꾸어 새로 편집했고, 이 가운데는 1부의 글들도 절반 정도가 포함되어 있더군요. 번역서의 2부는 원서의 3부의 일부만 옮겨 놓았구요, 더욱 놀라웠던 것은 번역서 3부의 글은 원서의 1부를 해체하여 번역서 3부의 도입부의 글로, 그리고 11장, 12장, 13장으로 분리하여 수록했습니다. 하나를 찢어 세 개의 장으로 분리해 놓은 것이지요. 
더 흥미로운 것은, 마지막에 붙어 있는 <특별기고>는 번역서 출간에 덧붙여진 새로운 특별 기고가 아니라, 원서의 30번 글을 셋으로 나누고 각각의 부분 앞에 짧은 문답 형태의 글을 담은 틀을 앞에 달아 놓고 나뉘어진 본문을 설명처럼 뒤이어 붙여 놓은 방식으로 새로 편집한 후에 <특별기고>라는 제목을 붙여 놓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앞부분에는 이 글이 ‘공동체주의의 한계’를 재구성한 것이라는 말이 있기는 합니다. 이렇게 재구성을 한 원래의 원고가 원서에 있다면 거기에 <특별기고>라는 말을 쓰지 않았어야 옳습니다.

그리고 원서에 들어 있는 글이 번역서에 없는 것도 있는 것 같습니다. 글 제목과 본문이 많이 왜곡되어 있어서 일일이 다 찾기에는 시간이 많이 걸려서 중도에 그만 두어버렸습니다. 위에 쓴 내용만 하더라도 스캔들이 되기에는 충분할 것입니다.

저는 번역서의 이러한 자의적 편집에 충격을 받아서 샌델 교수께 이메일을 보내 이 사실을 사전에 통보받거나 현재 인지하고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출판사로부터 이런 식의 ‘변형’에 대해 사전에 들었던 기억이 없으며, 모르고 있었다고 답신을 보내왔습니다. 
이런 것을 출판사의 관행이라고 봐 주고 그냥 인정해야하는 일인가요? 저만 놀라고 분노하고 있는 것인가요?

좌우간, 새로 나올 번역본에서는 모든 글이 제 순서로 갔고, 원서의 내용에 보태서 들어가는 글도 있습니다. 번역서의 제목은 <정치와 도덕을 말하다>로 하고 영문으로 크게 Public Philosophy라고 넣겠다고 출판사에서는 말을 하는군요. 저는 원래대로 <공공철학>으로 하자고 했지만, 내용을 보면 딱 맞는 의역이라고 볼 수는 있습니다. 출판사에서 시장조사를 했더니 <공공철학>이라는 제목이 생소해서 <정치와 도덕을 말하다>가 더 좋겠다는 여론이 많이 우세했던 모양입니다. 어쨌든 쫌 재미없는 경험을 하고 있는 요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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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박사의 철학하기



과거 미국에서 인기리에 방영됐던 '닥터 하우스' 에서 주인공 닥터 하우스에서 언행과 행동에서 들어나는 철학적 주제를 다루고 있다.


닥터 하우스에서 느낄 수 있듯이 의학을 소재로 한 드라마다. 진단의학 분야에 최고를 자랑하는 닥터 하우스, 그와 함께 일을하는 역시 최고의 의사 4명과 주변인물, 그리고 환자가 이 드라마를 이끄는 소재들이였다면 그져 그런 의학드라마로 끝이 났을거다. 닥터 하우스는 여기서 하우스라는 인물에 아주 독특한 캐릭터를 부여함으로써 단순한 의학드라마에 갈등요인을 첨부한다.


의사라는 직업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떠올리는 이미지는 헌신, 봉사들이다. 문제는 그러한 이미지로 인해서 다가오는 '좋은 의사' 라면 당연히 환자들에게 헌신하고 봉사하고 인간미 넘치는 사람으로 규정한다. 하지만 닥터 하우스에서 하우스라는 의사는 못되먹고 심술궂다. 타인의 약점을 알아채면 빈정대고 '모든 사람은 거짓말을 한다'라는 말로 환자를 애시당초 신뢰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모든 에피소드의 주제는 닥터 하우스로부터 비롯된다. 우리가 흔히 '그럴거야' 하는 당연한 것을 거스르는 인물이 바로 하우스이며, 그래서 모든 에피소드에는 우리가 당연히 그럴거야 하는 주제에 대해서 반론을 제기하는 인물이 된다. 이야기의 흐름은 아픈 환자가 입원을 한다. 그러면 진단의학과 닥터 하우스 팀이 환자를 진단하는데, 환자의 증상을 보고 제자 의사들이 진단한다. 그런데, 닥터 하우스는 나름의 천재적인 통찰력으로 제자들의 보지 못한 원인을 알아내고 자신의 특유의 치료법을 고집하기 시작한다. 제자들과 주변 의사들은 그렇게 해야하는 확증도 없으면서 그렇게 하는건 환자를 죽이는 일이라며 반대하고 나서고 하우스는 'Idiot'라는 말로 자신의 소신을 밀고 나간다.


이러한 갈등으로 인해서 MRI를 고장내기도 하고 장기의식 우선자 명단에 자신의 환자를 올리기 위해서 환자의 상태보고서를 조작하고 자신의 주장이 맞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약물까지 바꿔치기하는 등 윤리적 관점에서 파렴치한 일을 서슴없이 한다. 


이 책은 바로 그러한 '파렴치한' 행동을 하는 닥터 하우스를 윤리적, 도덕적, 의학적 관점에서 분석한 책이다.


단순한 의학 드라마로 끝났을 것을 당위성에 '그건 잘못됐어!! 그것도 몰라 이 바보야~' 라고 빈정대는 대사는 시청자들에게도 똑같이 던지는 메시지여서 시청자들도 이야기 속의 한 주체로 자리잡게 된다. 그로 인해서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우리는 하우스와 대치하게되고 윤리적, 도덕적, 의학적 주제에 대해서 서로 피튀기는 논쟁속에 놓이게 된다. 


시청자들은 닥터 하우스에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가 없기때문에 우리를 대신할 인물을 찾게되는데, 그게 바로 하우스의 제자들이다. 그들은 항상 하우스에게 반대되는 의견을 말하고 하우스로부터 빈정대는 말을 들으며 생활한다. 제자들도 도덕적, 윤리적으로 특징이 극명하다보니 이 드라마를 보게되면 하우스를 제외하고 자신과 닮은 사람 한명은 있게된다. 시청자들은 바로 하우스와 논쟁에서 그 제자들중 한명을 응원하는 방법으로 애피소드의 철학적 논쟁에 뛰어들게 된다.


이 책은 많은 애피소드들중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바가 큰 것들을 예로들면서 철학적인 명제를 검토한다. 많은 철학자들이 하우스라는 인물과 그 주변에 대해서 벌어졌던 이야기들중에 하우스가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무엇이 좋은건지를 탐구하는 형식이다. 예를들면 하우스가 과연 미치광이일까 하는 물음에서부터 의학적인 윤리에 비춰서 자신의 환자가 장기의식을 먼저 받기위해서 환자의 상태를 약물을 통해서 악화시키는, 일종의 조작을 하는 하우스에 행동을 비판해보는 식이다. 


왜 하우스는 못되게 굴까? 왜 그가 의학적 윤리를 버리면서까지 그런 행동을 하는것에 정당성을 찾을 수 있나? 좋은 의사는 도덕적으로도 좋은 사람이여야 하는가? 평소에 '당연하다'라는 명제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만들고 그것을 탐구하는 좋은 시간이였다. 


내가 느낀 하우스는 소크라테스, 데카르트라는 철학자가 떠오른다. 진단의학과의 특성상 하우스는 소크라테스 방벙론, 대화론을 주로 사용했고 모든 것을 의심하는 환자가 내뱉은 말까지 의심하는 그래서 모든 것은 잘못되었을 거라는 것을 기반으로 논리 전개를 펴는 것이 마치 데카르트라는 철학자를 떠올리게 한다.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다산 정약용은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학자다. 실학의 대가로 현재를 사는 사람들에게까지 그의 학문의 영향은 지대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다산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자식들, 형님, 동료 선비들에게 보낸 편지들을 엮어 번역한 것이다. 


다산 정약용은 자제들이 많았는데, 대부분 어렷을적에 잔병으로 죽고 아들 두명과 딸 한명만이 장성했다고 한다. 남존여비 사상이 강한 조선후기시대였기 때문에 편지는 대부분 아들들에게 가르침을 위해서 쓰여졌다. '독서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시는 어떻게 지을 것인가?', '양계를 해도 사대부답게' 등의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


내가 몇년 전부터 독서에 대하여 깨달은 바가 큰데 마구잡이로 그냥 읽어내리기만 한다면 하루에 백번 천번을 읽어도 읽지 않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무릇 독서하는 도중에 의미를 모르는 글자를 만나면 그때마다 널리 고찰하고 세밀하게 연구하여 그 근본 뿌리를 파헤쳐 글 전체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날마다 이런 식으로 책을 읽는다면 수백가지의 책을 함께 보는 것과 같다. 이렇게 읽어야 책의 의리를 훤히 꿰뚫어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니 이 점 깊이 명심해라.


- 독서는 어떻게 할 것인가 -


다산 정약욕은 유배지 강진에 '다산초당'을 짓고 유배생활을 학문연구에 몰두한다. 편지의 내용을 보면 책을 어떻게 엮을 건지, 책을 어떻게 펴내야하는지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간다. 형님(정약진)에게까지도 책을 엮을때에 주의사항등을 편지로 보낸걸 보면 다산 정약용은 책을 읽고 만드는 것을 매우 귀하게 여겼던거 같다. 책을 읽을때에는 그 책에 쓰여진 단어의 본질적인 뜻을 찾아보고 읽기를 희망했다.


나 죽은 후에 아무리 청결한 희생과 풍성한 음식으로 제사를 지내준다 하여도 내가 흠향하고 기뻐하기는 내 책 한편 읽어주고 내 책 한 구절이라도 베껴두는 일보다 못하게 여길 것이니, 너희들은 꼭 이 점을 새겨두기 바란다. 


만약 내가 사면을 받게 되어 이 두가지 책(주역사전, 상례사전)만이라도 후세에 전해진다면 나머지 책들은 없애버리다 해도 괜찮다. 


- 나의 저서를 후세에 전하거라 -


그가 유배지에서 저술한 책은 500여권에 달하는데 현재는 대부분 전해지지 않고 있다. 


유배지에서 생활을 학문연구의 전념한 다산 정약용. 조선후기 실학을 집대성하고 수 많은 저술을 남기 학자였지만 인간적으로 어떤 사상과 생활상에 대해 어떠한 시각을 가졌는지에 대해서 그의 저술만으로 알기는 힘들다.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는 다산 정약용의 실제 생활상에서의 생각과 자식들에게 가르침을 어떻게 전하고 있고 책을 어떻게 읽을것인지와 같은 일반론적인 관점에서의 그의 생각을 옆볼수 있는 매우 귀중하고 흥미로운 책이다.






당신은 전략가 입니까?

세계 최고 명문 하버드 경영대학원에 EOP 프로그램을 이끌고 있는 신시아 A. 몽고메리의 경영학 강의론이다. 강의론이라고 해서 뭔가 딱딱하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뭔가 가르치기위한 학습단계별 주제가 있는 것뿐이지 물 흐르듯 필요한 주제를 전달하고 있다. 



당신은 전략가 입니까?당신은 전략가 입니까?




당신은 전략가 입니까?


이 질문은 EOP 프로그램 첫 강의에 신시아가 던지는 질문이다. 명문 하버드 경영대학원답게 수강생들은 전세계에서 몰려든 CEO들이다. 자신이 사업을 일구어내어 그 위치에 서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고 이겨낸 어찌보면 인생에서 나름 뭔가를 해냈다는 자부심을 가진 그들이다. 그런데 신시아가 던진 이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한다.


이 질문에는 지금까지 경영대학원에서 가르치는 통상적인 방법을 깡글이 무시하는 의미도 담겨 있다. 신시아가 EOP 프로그램을 개발한 이유는 지금까지의 MBA 강의가 현실과 많은 괴리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였다. 이론을 확립해 현실에 적용하기 시작하면서 이미 현실과 맞지 않게되고 이를 보강하는 역작업을 반복해서 해왔다는 것이다. 근본적인 경영대학원의 수업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신시아는 EOP 프로그램을 개발, 기존의 MBA식 강의를 대신하게 된다.


이 책을 읽게되면 CEO가 아니러다로 기업의 경제활동에 대해서 약간의 시각을 가지게 된다. 그 이유는 이 책에 목차에서도 찾아 볼수 있다.


위기 앞에서 Yes를 외치는 사람들. 46p

실패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첫번째 단서, 슈퍼-경영자의 신화. 57p

두번재 단서, 치명적 경제요인. 59p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 66p


'위기 앞에서 Yes를 외치는 사람들', '슈퍼-경영자의 신화',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것' 이 세가지는 당신이 기업에 종사자라면 많이 보게 된다. 그리고 이 세가지는 항상 기업이 어려움에 쳐있을때에 극명하게 나타난다. 


지금까지 나는 회사를 잘 이끌었어. 지금의 위기는 항상 기회라는 긍정적인 사고로 돌파를 해야해. 해낼 수 있어.


신시아는 이러한 사고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당신의 성공 가능성은 미리 결정되어 있었다. 게임은 이미 끝난 것이다. 혹여 끝나지 않았더라도 당신은 게임의 많은 부분을 통제 할 수 없다."

행동 지향적인 경영자들은 자기 자신이 외부 요인에 의해 휘둘린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결정론이 아니라 자유의지를 믿으려는 것이다. 그들은 산업이 기업의 실적을 주도하거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전 대책을 강구하는 리더이자 경영자의 힘을 믿는 그들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것은 무시하거나 과소평가하는 반면,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주력하는 경향이 있다.


기업이 어떤일을 할때는 외부요인, 즉 시장의 흐름을 냉정하게 읽고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시장의 흐름을 바꾸거나 시장지배력인 위치에 설수 있다는 오만한 사고는 결국 기업을 파멸로 이끌 뿐이다.


이뿐 아니라 신시아는 기업이 하나의 목적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는 기업효과로 연결되어지는 시장에서 기업의 가치를 설명해준다. 많은 기업들이 이러한 목적에 대해서 다양하게 설명한다. 신시아는 '고객을 최우선으로..', '사람을 최우선으로...' 등과 같은 말은 무의미하다고 주장한다. 그가 말하는 제대로된 기업의 목적으로 예를든것은 대략 다음과 같다.


______는 세계의 모든 운동선수들에게 영감과 혁신을 가져다준다.


______는 점점 많아지고 있는 새로운 사이트에서 더욱 더 효율적인 방식으로 빠르고 훌륭하게 온라인 검색을 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다.


______ 그룹은 그룹 내 브랜드와 관련된 모든 세분화된 시장에서 최고의 수준과 뛰어난 품질에만 집중하는 유일한 자동차&오토바이 제조업체이다.


이런 기업의 목적을 명확하게 하고 이를 전 직원들과 공유했을때에 그 기업은 가치를 지지고 올바른 길을 걷게 된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나서 드는 생각은 '과연 내가 다니는 회사는 어떨까?' 였다. 그리고 '좋은 직장은 과연 무엇일까? ' 하는 것이 였다. 내가 CEO가 아닌이상 나는 특정한 기업에 소속되게된다. 문제는 그 기업이 나를 기업 가치를 창출하고 함께하는 동반자로 생각하느냐 아니면 돈을 벌어들이는 기계로만 생각하냐 하는데 있다. 


뭐.. 이런 생각은 한국에서는 부질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취업자가 기업을 선택하는 것이 아닌 이상 말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나를 기계대하듯하는 기업에 몸담고 싶은 마음은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더 더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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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으로 살수 없는 것들.

마이클 샌덜 교수의 새로운 책 '돈으로 살수 없는 것들' 이다. 


마이클 샌덜이 쓴 책이라고 한다면 무조건 집어든다. 철학자인 그에 책을 무조건 집어드는 이유는 그가 말하는 주제가 머나먼 철학자, 정치가들만한 위한 것이 아니고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것을 주제와 근거를 하기 때문이다. '정의란 무엇인가' 에서도 실제 생활에서 벌어지는 일과 사건들을 소개하면서 철학이라는것이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라 일반인들, 민주시민이라면 늘 함께 고민하고 생각해야할 것들이라고 역설하기 때문이다.





'돈으로 살수 없는 것들'의 논리적 전개도 '정의란 무엇인가'와 다르지 않다. 조그마치만 샌덜의 눈으로 봤을때에 논의가 될 수 있는 간단한 것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섬뜩한 예로 '생명' 가지고 하는 '도박'을 하는 생명보험에 이른다. 이는 철학적인 주제이면서도 생활적인 주제다. 철학은 멀리 있지 않고 생활에 녹아 있는 것이다.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효용성만 갖추면 끝인가?


'돈' 에 대한 이야기에 경제학자가 등장하는 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경제학자들은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이 서로 이득이 된다는 관점에서 합의에 이른 거래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경제학자들은 이러한 관점에서 이루어지는 '돈의 거래'는 문제가 없다는데에는 '자유', 더 나가 자유시장 원리에 입각한 것이다. 


마이클 샌덜 교수는 이를 비판한다. '과연 그것이 전부인가?' 라는 질문은 이 책 전반에서 던지는 질문이다. 


생명보험 전매시장은 말기환금 산업으로 불렀다. 여기서는 에이즈 환자나 기타 불치병으로 진단 받은 사람들이 소유한 생명보험 증권이 거래된다. 이때 시장이 작동하는 방식을 살펴보자. 10만 달러 생명보험 증권을 소유한 사람이 의사에게 앞으로 일 년밖에 살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가장하자. 그리고 치료를 받거나 짧으나마 여생을 잘 살펴보려면 돈이 필요할 것이다. 어떤 투자자가 환자에게 할인된 가격으로, 예를 들어 5만 달러에 생명보험 증권을 사고 연납 보험료를 지불해주겠다고 제안한다. 최초 보험계약자가 사망하면 투자가는 사망 보험금 10만 달러를 받는다.


자유시장 경제 원리에 입각해 위 예제를 본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상호간의 합의를 한 것이며 이는 효용성을 극대화한 형태이기 때문에 자유시장에서 말하는 재화로서의 가치를 모두 갖춘 것이고 이는 거래를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다. 양측 모두 이익이라는 관점에서의 효용성의 극대화가 이루어진 자유시장 경제에 들어 맞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뭔가 불편함을 느낀다. 생명보험 증권을 구매한 구매자는 하루빨리 피보험자가 죽기를 바랄 것이다. 만일 피보험자가 생각보다 오래산다면 생명보험 증권을 구매한 사람은 불행해 질 것이다. 


효용성이 극대화된 거래이지만 뭔가 잘못되었다고 반박을 하는 논리적 근거를 마이클 샌덜은 말해준다. 사회적 공공 선, 도덕적 관점, 원칙들과 같은 '비시장적 규범'들은 돈으로 거래했을때에 '부패'한다고 말한다.


부패라고 하면 흔히들 부정 이득을 연상한다. 하지만 부패는 뇌물이나 불법 거래 그 이상의 것을 의미한다. 어떤 재화나 사회 관행을 부패시키는 행위는 그 평판을 깍아내리는 행위고, 가치를 합당한 수준보다 낮게 평가하는 행위다.


생명보험 전매시장은 사람 자체와 생명에대한 평판, 가치등을 낮게 평가한다. 보험증권을 구매한 구매자는 하루 빨리 환자가 죽어야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에 한 사람의 생명이  빨리 꺼지기를 바란다. 이는 도덕적으로 올바른 사고가 아니다.


이 책을 감수했던 철학자는 다음과 같이 책 뒷장에 덧붙였다.


  지금 대한민국은 큰 위기에 빠져 있다. 그 위기는 우리 사회가 점점 더 시장논리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고 본다. 지난 몇년간 한국 사회에 깊이 드리워진 그림자는 경제에 도덕적 가치를 부여하는 정치의 참 의미를 망각한 채, 국가의 부를 좀 더 늘이면 시민들이 행복해질 것이라는 정치가들의 잘못된 믿음에서 비롯되었다. 더 나아가 무엇을 잃어버리고 있는지조차 돌아보지 못한 채 좀 더 부자로 살아보려는 그릇된 욕망을 채우기에 급급했던 우리 자신의 탓도 크다. 

  따라서 나는 이 책이 우리의 현실을 진단하고 고민해보는 데 적절한 역활을 할 것이라고 믿는다. 온건하지만 큰 물결을 일으킬 수 있는 귀중한 지혜가 이 책 속에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이명박 정권 탄생에 이면에는 도덕적 가치보다 돈의 가치을 우선시한 결과였다는 것을 부정하기는 힘들다. 문제의 포커스는 이명박이 아니라 그러한 이명박을 선택한 국민이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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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선택에 관한 한 젊은이의 고찰.  (0) 2012.05.02

FTA 한 스푼 그리고 질문 하나.




한미 FTA 만큼 지난 7년동안 한국사회를 혼잡하게 만든 것은 없다.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한미FTA가 의제가 되길 희망하지만 나나 이 책을 쓴 저자는 그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국내서적으로는 보기드물게 최고의 책이다. 최고의 책이라고 하는 이유는 문제의 본질을 군더더기 없이 기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미FTA를 보는 관점에는 '노무현이 시작했다', '재협상을 해야한다.', '한미FTA로 수출이 늘어나서 한국경제를 살릴거다' 라는 것이다. 하지만 한미FTA의 본질은 이것이 아니다. 한미FTA는 '통상정책'중에 하나일뿐이다. 그런데도 한국에서의 한미FTA는 신념, 이념, 종교적인 시각으로만 논란이 일었다. 정작 중요한 경제학적인 관점인 '통상정책'의 틀에서 논란이 된 적은 없다. 


저자 우석훈 박사는 이러한 한미FTA의 본질적인 시각, 한국의 대미 통상정책으로서의 한미FTA를 보고 있다. 이것은 그동안 DJ로부터해서 노무현 정부, 지금의 이명박 정부까지 15여년동안 한국이 통상정책이 과연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진단며, 한미FTA가 경제학적 통상정책으로서의 관점에서 무엇이 문제가 될 것이며 어떠한 영향을 줄것인지에 대한 고찰과 미래를 전망한다. 


더 나가 한미FTA를 지켜봤던 한 사람으로서 한국인들이 한미FTA를 지금까지 어떻게 지켜봤는지에 대한 고찰도 함께 들어 있다.


한미FTA는 우리에게 경제 내부의 힘으로부터 온 것도 아니고, 외부의 경제적 힘으로부터 온 것도 아니다. 이것은 정치로부터 왔으며, 밀실로부터 왔고, 협상과 비준, 발효에 이르기까지, 비 경제적 요소에 의해서 지배된 협정이었다. 원래는 경제 협상이 되는 게 맞지만, 외형만 경제였다. 미국을 통한 '경제 영토 확장'이라는, 경제와는 별 상관 없는 소제국주의적 발상에서, 마지막 비준 단계에서는 미국과의 동맹 강화 효과, 소위 '맹방 논리', 이런 국제 정치적 고려만 남은 정치 협정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등장한 것 아닌가?


경제적인 관점은 사라지고 정치적인 관점으로만 논란이 전개되었던 한미FTA. 그본적인 원인에는 통상교섭본부를 외교부에 둠으로인해서 외교부와 청와대의 소수자들이 권력을 휘두른 것에 있다. 더군다나 외교부는 대외 국가들과의 논쟁에서 항상 한국인들을 주저 앉히는 역활에 충실하다. 그러다보니 말도 않되는 한미FTA를 체결하고 방향성에 문제가 생기자


미국과 FTA로 경쟁을 통해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이것을 다른나라와 FTA를 통해서 수출을 늘릴수 있다.


별 거지같은 논리로 한미FTA를 추진한다. 


더 웃긴건 협정문 공개도 거부하고 그걸 국회의원 비서관 신분으로서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서 공개한 천쟁배 의원의 비서관은 고발을 당하고 실형을 살아야만 했다. 한미FTA를 반대하는 것에는 '반미'로 몰아붙이기 일수고,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라는 이미지로 수출만이 한국 경제를 살린다는 도그마를 씌워놓고 한미FTA를 하지 않으면 마치 한국 경제가 망하는 것처럼 호도했던 외교부. 

 

한미FTA 처럼 사회적 약자를 죽이는 협정도 없는데도 몇몇 관료들로 인해서 국민 전체가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야만 하는 이 현실. 그리고 본질적인 문제를 호도하기위한 그럴듯한 말과 정치적인 이념, 신념의 대결은 '글로벌 호구' 한국의 위상을 말해준다. 


한미 FTA를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 이건 아주 좁은 작은 문제이다. 더 중요한 것은, 다음 정부에서 통상 정책을 어떻게 할 것인가이다. 우리는 왜 무역을 하는지, 한미 FTA가 어떤 맥락에서 구정의 논의 테이블에 올라왔는지, 그런 질문을 모두 잊고 있는 듯하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또 한번 느꼈다. 우리나라가 후진국일 수 밖에 업는 이유. 최근에 자주 나오는 말로 정권 교체, 경권 교체가 있다. 하지만 이것을 실행에 옮기고 정책을 집행하는 것은 사람이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해서 '공무원'이다. 외교부는 나라의 외교를 담당하는 매우 중요한 공무를 하는 곳이고 거기에도 공무원이 있다. 하지만 그 외교부가 했다는 일들은 미국을 대표하는 일, 국가간의 분쟁이 발생했을때에 자국의 기업들을 주저 앉히는 일이였다. 무능하고 자기 할일 않하고 앉아서 그냥 돈만 받아가고자 하는 사기성 기질을 가진 인간들이 추진한 것이 한미FTA다. 


한미 FTA 협정문 국민 번역본에서 번역 오류가 수없이 나와서 결국 법원에서 정오표를 공개하도록 판결하였다. 협상 기본 분석이나 전략 제시는 커넝, 있는 문장도 제대로 번역할 수 없는 게 지금 통상교섭본부의 인력 구조이다. 비정규직 번역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 그나마 FTA 담당관에 사위 장관의 딸인 '똥돼지'가 치고 들어왔던 상황, 그게 우리의 현실이다. 이게 외교부가 그렇게 자랑하던 통상교헙본부의 현주소이다.


공권의 권력도 바뀌어야 한다. 영혼없는 인간들이 다수를 위해서 할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다. 정권이 바뀌면 과거 공권이 정횡들을 낱낱히 밝히고 역사청산을 하고 거기에 시민권력으로 채우지 않는한 대한민국에 미래는 없다.





국민판사 서기호 입니다.



한국에서 판사만큼 답답한 직업은 없다. 판사라는 직분때문에 자신의 개인적인 소감이나 사회현상에 대한 발언들도 문제가 될 수 있다라고 여기는 곳이 한국이기 때문이다. 판사는 직분일뿐이고 어떤 현상에 대해서 말할 권리는 사람으로서 주어진 것임에도 판사라는 직분과 사람을 동치시켜서 생각하는데에 문제가 있는 듯 보인다.


서기호 판사는 이러한 동치관계에 대해서 '잘못되었다'라고 말한 용기있는 판사다. 원래 원칙상으로는 당연한 것임에도 '용기있는 판사'라는 평가를 해야한다는 것이 서글프기도 하다. 


헌법상으로 규정된 개인의 자유와 법원의 독립성. 하지만 이 두가지 헌법상의 정의는 법원에서조차 구현되지 않고 있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법원 스스로가 이러한 헌법상의 정의를 구현할 마음이 없어보인다. 합의부에 구성에서부터 법원행정처에 이르기까지 법원의 조직 구조는 그야말로 군대 저리가라할 정도록 계급적 속성을 아무 많이 가지고 있다. 더군다나 판사들의 인사권을 대법원장이 쥐고 있다는 것과 인사평가를 10년에 한번하면서 그렇나 인사평가의 객관성을 담보하기위한 그 어떠한 제도도 없다는 것이 '계급적 법원 공무원'으로서 판사를 규정하게 만든다.


판사는 법과 양심에 따라 하는 것이라 사법연수원 선배의 눈치를 봐야 하고 부장판사에게 잘 보여야 하고 법원 행정처 차장에게도 잘 보여야 한다. 짤리지 않을려면 윗선에게 잘 보여야 하는 조직이 2012년 지금의 법원이다. 이러한 조직구조 속에서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사법주권'을 정의의 이름으로 대신 행사한다는 마인드를 가지기는 쉽지 않다. 


법복을 입고 재판장에 들어서면서부터 부장판사 눈치를 보고 인사평가를 생각하는 마음을 들고서 어떻게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국민들에게 정의가 무엇인지, 서로간의 분쟁을 원만하게 처리하도록 조정자로서의 역활은 온데간데 없고 그져 자신의 월급봉투를 받기위한 공무원으로서 전락한다. 더 웃긴것은 자신들이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우월감도 한목한다. 그래서 재판장이라는 권위를 내세워 억울함에 분을 삭히지 못하는 당사자들에게 '감히 여기가 어딘데 신성한 법정에서 막말을 하느냐며' 그들을 몰아붙인다.


잘못되었다.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지했다면 그러한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자하는 행동으로 나타나야 한다. 여기 국민판사 서기호는 법원에서의 '잘못된 점'을 인식하고 그것을 바로잡고자 힘겹게 외치다 쫓겨났다. 법원으로서는 '시끄러운 녀석' 쫓아냈으니 처리 된것으로 생각하겠지만 국민이 직접 임명한 국민판사가 이제 사법개혁을 이끌수 있는 국회의원으로 돌아왔으니 이제 그에게 기대만 할게 아니라 그와 함께 주권자를 행사하는 국민으로서 사법주권의 올바른 정의를 위해서 같이 가줘야 하지 않을까 한다.


이 책에서 서기호가 누구인지 판가가 누구인지, 법원이 어떤 조직인지를 말하고 끝낸 것이 아니다. '문제 있다'라는 문제인식을 대중들에게 던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러한 문제를 판사로 재직하는 동안의 서기호라는 인물이 어떻게 대했는지 왜 그러한 것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지는지를 대중들에게 호소하고 있다. 


법원에서 쫓겨난 서기호. 하지만 이제 국민판사라는 명실상부한 국민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는 그가 가는길에 많은 이들이 문제를 인식하고 함께 했으면 하는 마음가져 본다.



또 한가지 문제는 법원장과 단독판사의 관계가 부장판사와 배석판사의 관계처럼 스승과 제자의 관계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사법연수원에 들어가게 되면 부장판사 출신의 사법연수원 교수로부터 2년간 지도를 받습니다. 그 후에 배석판사가 되면 비슷한 시기에 그 사법연수원 교수진이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등으로 발령을 받아요.


그러다가 단독판사가 될 무렵이면 그 지법 부장판사가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징를 거쳐 1차 법원장이 됩니다. 처음에 맺은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계속 이어지는 거죠. 그러다 보니 법원장은 스승으로서 지도한다는 관점에서 단독판사를 대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 틀 안에서 판결문 고치는 것도 자연스럽게 여기는 경향이 어이져온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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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선택에 관한 한 젊은이의 고찰.

동물은 자연에 따라 정해진 활동을 하며 별다른 활동 범위가 있을 거라고 깨닫지 못한다. 인간 또한 하느님에 의해 인류와 자기 자신을 향상시키도록 결정되 있다. 그런데 어떤 직업으로 그 목표를 이룩할 것인가 하는 선택은 인간의 몫이다. 우리는 자기 자신과 사회를 향상시킬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해야 한다. 


그 선택이야 말로 우리 인간의 특권이자 의무이다. 그러나 우리는 타고난 천성에 맞는 직업을 언제나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를 둘러썬 사회의 여러 관계가 우리의 결정 이전에 이미 존재하며 우리의 직업을 좌우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남의 노예와 같은 도구가 되지 말고 고귀한 긍지를 가질 수 있는 직업을 택해야 한다. 직업 선택의 중요한 길잡이는 인류의 복지와 우리 자신의 완성 바로 그것이다. 


모든 인간의 완성과 복지를 위해 일하는 경우에 비로소 자기 자신의 완성도 이룩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역사는 세상 전체를 위해 일하면서 자기 자신을 차원 높이 끌어올리는 사람을 최고의 위인이라고 부른다. 그리하여 우리는 결코 나약하거나 편협하거나 이기적인 기쁨에 빠지지 않고 만인의 행복에 젖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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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카를 마르크스'가 17세때 쓴 소논문이다. 카를 마르크스는 독일에서 태어났는데, 12세때 마을에 있는 '프리드리히 빌레름 김나지움'에 입학했다. '김나지움'은 오늘날에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합쳐진 형태의 교육기관으로 대학을 가겠다고 하는 애들이 모인 곳이다. 대학에 진학하면 학자나 연구원이 되는 코스에 있는 곳이 '김나지움'이였다. (지금이야 대학을 가는 이유가 다양하지만 그 당시에는 그렇지 못했던 모양이다..) 


정규교육과정은 5년이였는데 졸업하는 해인 17세에 카를 마르크스는 진로에 관한 고민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고민에 대한 생각의 소논문으로 나온것이 '직업 선택에 관한 한 젊은이의 고찰' 이다. 


'인간은 하느님에 의해서 자기 자신을 향상시키도록 결정되 있다'라고 전제하고 이러한 자기 자신의 완성도를 이룩할 것으로 그 자신에게 맞는 직업을 선택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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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진보 (이정희 유시민 대답짐)


한창 TV를 통해서 진보통합론이 뉴스로 나오는때에 이 책이 눈에 띄었다. 안그래도 민노당과 국민참여당의 통합에 대해서 말들이 많은 때에 이러한 책이 나온것도 웃기지만 그런것을 차치하더라도 두 사람이 과연 어떤 인물일까 하는 생각이 더 컸다. 

보통 사람을 보는데, 특히나 정치인들을 볼때에 그들이 하는 행동들을 주목한다. 하지만 그러한 것으로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기가 힘들다. 그런데 이 책은 어떤 현안에 대해서 두사람의 생각을 물음으로써 그 사람이 가진 근본적인 생각을 끄집어 낸다. 물론 이러한 것도 연출일수는 있지만 TV에 나오는 연출보다야 덜하지 않을까.

유시민. 이 사람은 주관이 매우 뚜렸다. 명백한 자유주의자이다. 그가 말을 할때에는 명백한 기준이 존재한다는 것을 금방 알게된다. 하지만 그도 과거의 노무현 정권시절에 있었던 잘못에 대해서는 애매한 입장을 보인다. 이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변명정도로만 보이는듯 하다. 왜냫면 그가 말하는 기준으로 과거의 일을 봤을때 거스르는 것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미지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를 정치인으로 보는 사람은 없겠지만, 거의 정치인답다라는 생각을 한다.

이정희. 이 사람은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보다 실생활에서 활동가 이미지가 강하다. 실생활에서 부당함에 대해서 혹은 약자들을 위해서 제도를 개선하고 정책을 새우고 하는 그런 이미지 말이다. 어찌보면 이것이 진정으로 정치인의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어찌되었건 두 사람의 대담은 무겁거나 가볍지도 않아 적절한 무게로 인해서 쉽게 읽을 수 있었다. 더군다나 웃긴거는 이렇게 다른 사람이 말하는대도 많은 부분에서 공감하고 동의하고 같은 결론을 내리는 것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자신이 기준이 다른데도 이렇게 다른 관점에서 시각에서 문제를 바라보면서도 합의점이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두 사람이 어떤 기준을 가지고 있는지 많은 정책적인 현안들을 가지고 얘기를 풀아가는 것인 나름 재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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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도덕인가?


왜 도덕인가? 

마이클 샌덜 하버드대 정치철학 교수의 이 질문에 답하기란 쉽지 않다. 더욱이 이 질문의 영역이 정치라면 더욱 그러하다.  이책은 잘알려진 '정의란 무엇인가?'보다 먼저 나온책이다. 제목만 보면 정치철학에서 왜 도덕이 중요한지 이론적으로 말하는 것같지만 샌덜 교수의 특징인 현실세계, 여기서는 미국 정치,에서 도덕이 왜 필요한지를 역설하면서 동시에 지금까지 도덕이 정치와 만났을때에 어떠했는지를 고찰하고, 도덕이 공동체적인 문제나 공공철학적으로 영역을 옮겼을 경우에 발생되는 문제들을 살피고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기위한 자신의 주장을 담은 책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느낀 것이지만 결코 쉬운 책이 아니다. 중반으로, 종결로 갈수록 철학적인 논쟁을 철학, 정치적인 언어를 동원해서 쓰는 바람에 일반인이 그것을 따라잡기는 쉽지 않았다.

'정의란 무엇인가?' 강의에서 과거 철학자들의 정의를 뒤집어 보고 강의가 끝나기전에 샌덜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저는 어디일까요? 아시는분도 계시겠지만 저는 아리스토텔레스에 가깝습니다.
"""

이것은 지금까지 수많은 학자,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칸트에 생각에 도전장을 던진 말이다.

도덕은 인간으로서의 목적에 맞게 스스로 선택하는 문제다 - 칸트

칸트의 도덕으로 정립된 정의관에 따르면 인간은 인간 스스로의 목적으로 자신의 정한 규칙, 칸트는 이것을 자율이라고 불렀다., 맞게 행동하는 것이다. 이것은 도덕을 선한것으로 규정해서 그것에 맞춰 인간이 살아야하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선택하는 문제라는 것이다. 즉 도덕은 선택의 문제라는 것이다.

반면에 아이스토텔레스는 목적론적인 정의론을 주장하면서 인간은 '공공선'을 지향해야하고 따라서 그러한 공공선을 추구하기위한 도덕을 강조했다. 칸트는 이에 대해서 '왜? 도덕을 강요하나? 공공선을 지향하기위해서 인간을 수단으로 활용해서는 안된다' 라는 논리로 이를 부정했다.

이러한 도덕적 기준의 차이속에서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덜 교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에 서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현대 도덕, 정치철학은 칸트의 자유주의이론 위에 정립된 것이기에 하버드대 교수가 그러한 입장을 표명한 것은 현대의 도덕을 다리 해석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마이클 샌덜 교수가 주목한 것은 칸트 이론의 전제 조건이었다. 그 누구나 지지하는 견해를 위해서 칸트는 '모든 인간은 자신에 대해서만 목적을 가진다. 그것은 인간은 이성적 사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며 이는 모든 사람이 이성적 사고는 모두 동일하다'는 것을 전재로 한다. 그래서 칸트는 '자율'이라는 도덕적 기준을 자신이 정한 목적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전제는 결점이 있다. 개인의 도덕주의를 설명하기에는 적합할지 몰라도 '공동체적 도덕'을 주장할때는 결점이 있다는 것이다. 애국심, 충성심, 소속감, 가족, 교회, 시민단체활동등을 통해서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단체나 사회가 정한 도덕기준을 따르려 한다.

자유주의적인 칸트의 도덕이론만으로 과거 미국의 정치와 사회변화를 설명하려고 한다면 국가, 공공체, 가족과 같은 그러한 기준의 연대적인 도덕기준은 절대로 용납될 수 없는 것이며 이것은 현실세계를 살아가는 인간의 특징인 '소속감'과 같은 것으로부터 발생되는 도덕적인 책임과 의무등을 외면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한 것이다.

샌덜 교수는 이를 미국의 정치역사를 되집으면서 고찰한다. 미국의 정당인 민주당과 공화당의 대립양상을 도덕, 정치적 시각으로 바라보게되면 그곳에는 칸트만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미국인들이 가장 우려스러워했던 가족, 공동체의 해체등과 같은 문제들을 만나게 된다. 이러한 문제를 칸트의 자유주의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마이클 샌덜 교수는 그래서 '나는 아리스토텔레스에 가깝다'라고 주장한다. 결국 그가 말하는 정치철학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론과 같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공공선을 지향하고 추구하기위해서는 정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는 공공선을 추구하는 것이며 공공선이란 폴리스에 시민들이 선한 마음을 갖게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칸트가 맹렬히 비판한 '도덕=선'을 주장한 것이다. 

마이클 샌덜 교수는 칸트의 비판에 대해서 인간은 독립된 객체가 아니며 도덕이라는 객관적 지지를 얻기위해서 형이상학적 기초를 전제로 삼는다는 것은 공공체적인 인간을 무시한 것이며 이러한 견해는 국가, 가족, 시민단체등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에 도덕적 논쟁을 설명하기에는 부적합 하다고 주장한다. 국가가 도덕을 선으로 규정해서 그러한 방향으로 유도한들 그것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지 않는다면 무엇이 문제될까....

더나가 마이클 샌덜 교수는 이러한 주장을 통해서 시민들의 자유주의(자유방임적 자유주의)에서 벗어나 현실세계에서의 공공체와 정치에 관심을 기울일것을 책 중반부터 강력하게 권하고 있다.